강박 관념
술에 취해 비틀비틀 길을 걷던 승재의 눈에 이상한 물체가 눈에 띄었다.
“응?”
오래된 조명의 누런 불빛이 비치는 전봇대 밑, 가득히 쌓인 쓰레기봉투 사이에 무언가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쓰레기봉투를 뒤지는 길고양이라 생각하고 지나치려 했다. 하지만 고양이라고 하기엔 몸집도 컸고 쓰레기봉투를 뒤지는 모양새가 고양이 같지는 않았다. 오히려 체구가 작은 사람이 땅바닥에 착 달라붙어 무언가를 열심히 먹는 모습에 가까웠다.
보통 때 같으면 그냥 지나쳤겠지만 술기운 덕분에 샘 솟는 호기심으로 지나칠 수 없었다. 그는 비틀거리며 쓰레기봉투가 움찔대고 있는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게 뭐지?”
그는 흐릿한 불빛 아래 등을 보이고 이상야릇한 소리를 내며 앉아있는 어떤 생물체를 발견했다. 그게 무엇인지 확인하기 위해 좀 더 가까이 다가섰고 그의 몸은 그 생물체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동물의 소리와는 거리가 먼 이상야릇한 소리를 내던 그것은 조용하고 거대한 그림자가 자신을 덮치는 것을 깨닫고 소리를 멈췄다. 그 생물은 고개를 들고 좌우로 고개를 살짝 돌리며 생각하는듯하더니 갑자기 홱 하고 고개를 돌려 승재를 노려봤다.
“히익! 이게 뭐야!”
그는 단발의 비명을 지르고 몇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괴물. 말 그대로 괴물이었다.
크기는 대략 3~4살 어린아이 정도의 크기였으나 머리가 크고 팔이 몸에 비해 길었다. 다리는 팔보다 상대적으로 짧아 구부정한 모습을 하고 있었고 불빛 때문에 정확한 색은 알 수 없었지만 피부에는 실핏줄이 셀 수 없이 돋아 있었다. 머리털은 없었고 귀는 뾰족했다. 눈은 얼굴의 반을 차지할 정도로 매우 컸고 눈동자는 마치 고양이의 눈과 같았지만 눈꺼풀이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코는 거의 없어 얼굴에 구멍 정도만 붙어 있었으며 입은 귀까지 찢어져 기분 나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몸은 매끈했지만 생식기는 없었다. 그리고 꼬리가 있었는데 바닥을 주기적으로 탁탁 두드렸다. 아무래도 경계의 표현 같았다.
그 괴물은 승재를 쳐다본 후, 마치 가래가 끓는 듯한 소리를 내며 입을 벌렸다. 맙소사. 벌린 입안은 한 마리의 상어를 보는 듯했다. 그것도 성질이 매우 사납다는 백상아리. 이빨 모두 네모지거나 둥근 모습 하나 없었다. 모두 톱날같이 뾰족했으며 길게 찢어진 입 덕분에 그 모습은 더욱 기괴했다.
괴물은 그를 향해 몇 번 더 그르렁거리더니 이내 고개를 돌리고 앞에 있는 무엇인가를 게걸스럽게 먹기 시작했다. 그는 인상을 찌푸리며 한 발 짝 앞으로 다가섰다. 그가 다가서자 괴물은 그를 향해 또다시 가래 끓는 소리를 내며 위협하다 고개를 돌려 재빠르게 맞은편 집 담벼락을 타고 그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의 눈앞에는 괴물이 먹다 남긴 내장이 다 드러난 고양이의 사체가 널브러져 있었고 그는 고개를 돌려 몇 발자국을 걷다 담벼락에 손을 짚고 구토를 하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누군가 그를 봤다면 술에 취한 어떤 남자가 남의 집 담벼락을 변기로 착각하고 토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날 이상한 광경을 목격한 승재는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물론 술김이었지만 끔찍한 가래 끓는 소리와 기괴한 얼굴을 잊을 수 없었다.
그는 출근길에 어젯밤 괴물을 발견한 전봇대 밑을 가봤지만 어디에도 괴물의 흔적은 없었다. 아니, 괴물의 흔적뿐만이 아니라 내장을 다 들어내고 죽은 고양이의 흔적조차 없었다.
환경미화원이 새벽에 치운 것이라고 승재는 생각했다. 기억에 선명하기는 했으나 그 누구도 보지 못한 일을 얘기할 수는 없었다. 자칫하면 괜한 오해만 사서 자기만 이상한 사람으로 몰릴 게 뻔했다. 승재는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지난밤의 일을 자신의 마음속에 묻어 두었다.
며칠이 지나고 승재는 혼자 남겨진 사무실에서 야근을 하고 있었다. 그의 사무실은 땅값 높기로 소문난 서울의 강남 한복판 빌딩의 23층이었다. 승재의 자리는 창가 가장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강남 일대뿐만 아니라 더 먼 지역도 보일 정도로 경치가 매우 좋았다. 승재는 도시가 좋았고 그래서 도심 속에 있는 회사를 택했다.
한참을 집중하던 승재는 키보드에서 손을 뗀 후 하품을 크게 하며 기지개를 켰다. 두 팔을 위로 길게 뻗은 승재의 시선이 자연스레 반대편 건물에 고정됐고 자주 봐오던 건물 벽에 평소에는 보지 못한 어떤 물체가 붙어 있음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잘못 본 것으로 생각하고 일에 집중하려 했지만 도저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다시 건물 벽을 쳐다봤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창문에 두 손을 모아 얼굴을 갖다 댔다. 분명 며칠 전 봤던 그 괴물이었다. 모은 손과 얼굴을 이리저리 옮기며 괴물의 모습을 자세히 볼 수 있도록 노력했고 그는 확신했다. 역시 저번에 봤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괴물은 건물 벽을 긴 두 손과 짧은 두 발을 이용해서 느릿느릿 오르고 있었다. 여전히 얼굴은 기분 나쁜 웃음을 지고 있었고 중간중간 손과 발을 번갈아 가며 얼굴을 긁더니 혼자 키득거리기도 했다. 옥상에 거의 다다른 괴물은 건물 꼭대기 난간을 붙잡고 그네를 타듯이 긴 팔을 이용해서 발을 튕기며 혼자 재미있는 놀이라도 하는 듯 앞뒤로 왔다 갔다 움직였다.
몇 초가 흘렀을까? 혼자만의 시간에 빠져있던 그 괴물은 곧 잠잠해지더니 옥상 난간에 매달린 채 조용히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고개를 돌려 길게 찢어진 입을 벌리고 사나운 이빨을 드러냈다. 두 발을 빠르게 튕기며 승재가 서 있는 방향을 향해 성질을 부리더니 옥상으로 뛰어올라 그의 시야에서 빠르게 사라져버렸다.
그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으며 머리를 감싸 안았다. 도대체 왜 자기에게 저런 괴물이 보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시계를 보니 저녁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이런 시간이라면 강남 한복판에서 저런 괴물을 사람들이 보지 못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뭔가 자기에게 문제가 있는 게 분명했다.
사실 승재는 고등학생 시절 우울증을 앓은 적이 있어 약물치료를 받은 전력이 있었다. 그는 혹시 자신에게 어떤 정신적인 문제가 있지 않을까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괴물은 그 이후로도 승재의 앞에 몇 번 더 나타났고 결국 그는 병원을 찾았다.
두 손을 무릎 위에 얹은 승재는 쉴 새 없이 다리를 떨고 있었다. 두 눈은 접수처 데스크에 앉아있는 두 명의 간호사를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다. 간호사 한 명이 고개를 들어 승재를 쳐다보자 그는 빠르게 눈을 피하고는 자신의 발끝으로 시선을 옮겼다.
잠시 다리 떠는 것을 중단했지만 두 눈이 간호를 번갈아 쳐다보기 시작하자 모터가 달린 마냥 한쪽 다리를 또다시 심하게 떨기 시작했다.
“이승재씨.”
차트를 가슴팍에 안은 간호사가 진료실에서 나오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 승재는 들릴 듯 말 듯 대답한 후 간호사의 안내에 따라 진료실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는 일반적인 병원의 모습과는 매우 달랐다. 유명한 정신과 의사라고 추천을 받아 오기는 했지만 그래도 병원은 병원이겠지 생각했다.
하지만 진료실 안은 마치 대형 인터넷 포털 회사의 근무 환경을 연상케 했다. 원장과 상담할 수 있는 작은 책상 이외에도 마주 보고 이야기할 수 있는 크고 푹신한 소파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있었고 몇 가지 음료들이 소파 옆에 자리 잡고 있었다.
창가 사이사이에는 촛불이 흔들거리고 있었고 초가 타면서 내는 향이 진료실 안을 편안하게 만들어 줬다. 벽 또한 꽤 비싸 보이는 나무로 장식이 되어 있었다. 실내장식에 대해서는 쥐뿔도 몰랐지만 이렇게 색이 짙고 좋아 보이는 나무는 호두나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앉으세요.”
온화한 원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작은 책상 앞에 놓여있는 의자에 앉았다. 원장은 차트를 훑어보더니 승재에게 물었다.
“자꾸 무슨 괴물이 보인다고요?”
승재는 대답 대신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어릴 때 우울증을 앓은 적이 있군요. 하지만 이런 정신적 문제는 어릴 때 우울증 하고는 크게 상관이 없습니다. 근래에 어떤 큰 충격을 받은 적이 있나요?”
이번에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알코올 중독도 아니고 약물 중독도 아닌 분이 그런 이상한 괴물을 본다니 의외군요. 하지만 어떤 병이든 고칠 수 있습니다. 특히 정신적인 병은요. 아, 정신적인 병이라고 이야기 했지만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정신병자를 일컫는 건 아니니 오해하시거나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원장은 자기 자리에서 일어난 후 소파를 향해 몸을 돌렸다.
“자리를 좀 옮길까요? 느긋하게 이야기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군요.”
승재는 푹신한 소파에 몸을 묻었다. 원장은 승재를 향해 질문하기 시작했다.
“언제부터 그 괴물이 보이던가요?”
“한 달이 좀 넘었을 겁니다. 술을 먹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골목에서 본 것이 처음이었어요.”
원장은 술이라는 단어에 “흠”하는 짧은소리를 내뱉으며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때 간호사가 따듯한 차를 두 사람 앞에 내려놓고 사라졌다. 두 사람은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대체로 원장이 질문하고 승재는 대답하는 형식이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원장은 승재에게 처방을 내렸다.
“아무래도 우리 승재씨는 강박증에 시달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떠한 이유로 그런 괴물이 보이는지는 조금 더 치료하면서 알아보도록 하죠. 오늘 약 처방을 드릴 겁니다. 이 주일 후에 다시 오시고 혹시 그 안에라도 무슨 일이 있다면 연락하고 찾아주시기를 바랍니다.”
승재는 고맙다는 인사를 한 후 병원을 나섰다. 누군가에게 고민을 털어놨지만 마음 한구석은 여전히 불안했다.
그가 병원 앞에서 한숨을 쉴 때 버스 한 대가 지나가고 있었는데 지붕 위에서 그 괴물이 기괴한 웃음을 지으며 그에게 손을 흔들어 댔다. 이제는 나에게 아는 체까지 하는 것인가? 승재는 머리를 흔들며 모두 환영에 불과하다고 마음속으로 소리쳤다. 그는 고개를 들어 버스 위를 쳐다봤다. 막 자리를 떠나는 버스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병원에서 처방해 준 약을 꾸준히 먹으면서 하루하루를 버텨갔다. 며칠간은 그 녀석이 정말 승재의 눈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딱 삼 일이었다. 그 이후로 여전히 그 녀석은 승재의 눈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그가 정말이지 큰일 났다고 생각하는 한 사건이 일어나게 된다.
“망할 놈의 괴물. 오늘은 기필코 네 녀석을 내 앞에서 없애 주겠어.”
그는 마음을 굳게 먹고 괴물이 눈앞에 나타나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처음에 그가 괴물을 발견했던 전봇대 밑. 그날따라 달빛이 구름에 가려 전봇대의 조명에만 의지해야 했다.
그 녀석은 마치 승재를 기다렸다는 듯이 쓰레기봉투 사이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가 전봇대에 다다르자 그의 그림자가 괴물을 감싸 안았다. 그는 자신의 앞에서 천진난만하게 뛰고 있는 괴물의 목을 낚아챘다. 그리고는 신경질적으로 앞뒤로 흔들어 대며 소리쳤다.
“네놈! 네놈 때문에 미치겠어! 넌 환상이라고! 이 약병 보여? 다 너 때문에 먹는 거라고! 그러니까 제발 내 앞에서 꺼져!”
그는 한 손에 들고 있던 약병을 바닥에 던졌다. 약병은 바닥에 떨어지며 많은 알약을 내뱉었다. 알약을 흘린 약병은 또르르 소리를 내며 조용한 골목길에 작은 소음을 냈다.
하지만 괴물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저 긴 입을 양옆으로 벌리며 기분 나쁘게 웃고 삐죽한 이빨을 드러낼 뿐이었다. 그는 너무 화가 난 나머지 그 괴물을 담벼락에 퍽 소리가 나게 던져버렸다. 괴물은 단발의 비명과 함께 담벼락에 부딪히더니 축 늘어져 버렸다. 그는 천천히 걸어가 놈이 죽었는지 확인하려고 쪼그려 앉았다.
그때 그의 뒤에 거대한 그림자가 나타났다. 그는 쪼그린 채 고개를 돌려 자신의 뒤를 쳐다봤다. 엄청난 놈이었다. 자신이 내던진 이놈하고는 차원이 달랐다.
키는 자기보다 세 배는 커 보였고 손발은 스치기만 해도 죽을 것 같은 손톱이 자라나 있었다. 두 눈은 이글거리고 있었고 찢어진 입에서 뿜어 나오는 악취 때문에 기절할 정도였다. 이빨은 황소도 씹어 먹을 만큼 날카로웠고 등 뒤에는 거대한 날개까지 있었다.
그는 너무 놀라 조그만 괴물을 집어 던진 담벼락에 등을 기댔다. 하지만 조금 전 그가 내던진 그놈은 그 자리에 없었다. 조그만 괴물은 어느새 거대한 괴물의 다리를 기어올라 그것의 어깨에 올라타서는 가래 끓는 소리와 함께 기분 나쁜 웃음소리를 냈다.
거대 괴물은 승재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가까이하더니 몸 안의 모든 내장이 떨릴듯한 낮은 소리로 으르렁댔다. 그는 숨을 참으며 두 귀를 꽉 틀어막았다. 한참을 씩씩거리며 거친 숨을 내뱉던 거대 괴물은 고개를 한두 번 갸웃하더니 그에게서 서서히 멀어져 갔다. 그러더니 작은 괴물을 어깨에 얹은 채로 뒤를 돌아 천천히 골목길을 빠져나갔다.
그가 손을 내밀며 “안돼”를 외치고 있었지만 들은 채 만 채 그 거대 괴물은 골목 밖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는 엉금엉금 기어 바닥에 떨어진 약을 한 움큼 쥐고는 입에 마구 쑤셔 넣고 우적우적 씹었다. 그가 약을 채 삼키기도 전에 희미한 달빛 사이로 무언가가 큰 날개를 펼치고 허공을 가르며 날아가는 모습을 봤고 그는 정신을 잃고 말았다.
시끄러운 기계음이 들렸다. 눈을 뜨자 환경미화원들이 쓰레기봉투를 청소차에 싣고 있었고 청소차 뒤편의 기계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쓰레기봉투를 마구 삼키고 있었다. 한 청소부가 그의 옆에 있는 쓰레기봉투를 치우며 불쌍하다는 듯이 그를 쳐다봤다.
승재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난 후 비틀거리며 집을 향해 걸었다. 약을 과다하게 먹어서인지 감기 걸린 것처럼 머리가 띵했다. 도대체 어젯밤에 그건 뭐지? 정말 내가 미쳐가는 건가? 만약에 실제 하는 거라면? 그럼 난 어떻게 되는 거지? 아니, 그것들은 왜 온 거지? 이러다 내가 죽는 게 아닐까? 강박 관념에 시달리면 죽을 수도 있다고 하던데. 내가 정말 그런 걸까? 그는 비틀거리며 걷다 무슨 생각이 났는지 발길을 돌려 택시를 타고 어딘가로 향했다.
병원 앞 계단에 초췌한 모습의 그를 발견한 건 제일 먼저 출근한 간호사였다. 그녀는 그를 발견하고는 너무 놀라 건물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승재는 놀란 기색 하나 없이 게슴츠레한 눈으로 그녀를 쳐다볼 뿐이었다.
간호사의 연락을 받고 부리나케 달려온 원장은 승재의 상태를 보고 그의 상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원장은 승재를 안정시키고 그와 대화를 시도했으나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자신 앞에 놓여있는 흰 종이에 거대한 괴물만 그리고 있을 뿐이었다. 원장은 그를 되돌려 보내고 좀 더 강력한 처방을 내렸다. 그리고 상황이 심각해지면 그의 가족들에게 연락해 정신병원에 보내는 것을 권고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승재는 하루하루 약에 의존하며 힘들게 버텨갔다. 하지만 그의 눈앞에는 여전히 괴물이 나타났다. 하지만 괴물은 그의 눈에만 보일 뿐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았다.
분명 이건 정신적인 문제였다. 그도 자기 자신의 상황에 대해 객관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다 환상일 뿐이라고. 과도한 스트레스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하지만 자신도 확신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날이 갈수록 괴물이 눈에 보이는 빈도는 높아졌고 종류도 다양했다.
팔다리가 두 개도 모자라 네 개씩 달린 놈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마치 우주 끝 지옥에서 온 괴물들 같았다. 하지만 웬일인지 자기 자신에게 어떠한 해도 끼치지 않았다. 생김새로 보면 승재 자신을 금방이라도 잡아 먹을듯한 생김새를 한 괴물들이었지만 그에게는 어떠한 해도 끼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괴물들이 나왔다고 해서 주변에 어떠한 일들이 일어나지도 않았다.
하지만 주변에 어떠한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 그에게는 더 큰 고통이었다. 누구도 동정해주지 않고 혼자 속으로 앓는 꼴이었다.
그는 괴물의 실체가 역시 자신의 강박 관념에서 나온 환상이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정기적으로 병원을 오가며 약을 꾸준히 먹고 괴물을 이기기 위해 노력했다. 공든 탑은 무너지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승재의 공든 탑은 무너져 내렸다.
그의 강박 관념이 극에 달한 그 날. 그날은 승재가 승자이자 패자가 된 날이기도 했다. 어떤 면으로는 그에게 새로운 생명을 안겨준 날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지옥을 보게 될 인간을 만든 날이기도 했다.
회사에서 근무 중 그는 머리도 식힐 겸 포털의 뉴스를 보고 있었는데 아주 흥미로운 뉴스 하나를 발견했다. 남미에서 아주 오래된 화석이 발견됐는데 지구상에 살았던 생물의 모습과는 판이하다는 기사였다. 그는 꽤 흥미로운 뉴스라며 화면의 스크롤을 습관적으로 내리기 시작했고 그의 눈에 한 장의 사진이 눈에 띄었다. 자세하지 않았지만 분명 그는 알아볼 수 있었다.
분명 그놈이었다. 삐죽한 이를 내보이며 그에게 기분 나쁜 웃음을 짓던 그놈. 노란색 조명이 비치는 전봇대 밑에서 고양이를 게걸스럽게 먹던 그놈. 그 화석에서 발견된 건 바로 그놈이었다.
그는 기사의 스크롤을 멈췄다. 두 다리가 떨리고 손가락은 마비되고 있었다. 지금 그가 고개를 돌리면 그 녀석이 삐죽한 이빨을 내놓고 그를 향해 뛰어올 것만 같았다. 그는 눈을 질끈 감았다. 현실이 아니라고 백 번은 외쳤다. 그래 이 사진은 내가 잘못 본 것이다. 내가 겁먹은 나머지 오래전 화산재에 묻힌 동물의 모습을 보고 그놈이라고 착각한 것이다. 그는 마음속으로 자신을 격려하며 눈을 떴다.
왜 현실은 자기가 마음먹은 대로 흘러가지 않을까? 모니터 위에는 그를 향해 웃는 그놈이 앉아있었다. 찢어진 입 사이로 삐죽한 이빨을 드러내고 씩 웃은 채.
그는 자리를 박차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회사 사람들이야 뭐라 그러든 상관없었다. 이제 자신은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주머니에 들어있던 약병도 집어 던졌다. 이제 이따위 약도 필요 없었다. 그는 미친 게 너무 분명했다. 그래 나는 미친 거다.
그의 머릿속에는 정신병원이나 교도소에서 쓰는 억압복에 묶여 있는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독방에 갇혀서는 매일매일 괴물이 나타났다고 떠드는 모습도 보였다. 그럴 때마다 흰 병원복을 입은 건장한 사내 몇이 와서는 자신에게 주사를 놓고 가는 모습도 보였다.
그래 나는 미친놈이다. 이제야 마음이 편했다. 처음부터 이러면 될 것을 왜 그렇게 고생했을까? 왜 그놈의 괴물을 만나고 팔다리가 두 개도 모자라 네 개가 달린 놈을 눈앞에 만들어 냈을까?
그는 한참을 뛰어가다 숨을 헐떡거리며 거리 한가운데 섰다. 두 손을 무릎에 얹은 채 숨을 고르다 큭큭 거리며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그를 슬슬 피했다. 어떤 사람들은 핸드폰으로 그의 모습을 찍기도 했다. 몇 사람들은 멀찍이 서서 수군덕댔다. 평소 같으면 화를 내야 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점점 더 크게 웃었다.
한참을 웃던 그가 하늘을 쳐다봤다. 저 멀리 붉은 반점이 보였다. 이제는 하늘까지 이상하게 보이나? 이젠 정말 미쳐가는군. 그는 하늘을 쳐다본 채 입을 반쯤 벌리고 붉은 반점을 쳐다봤다. 그 반점은 점점 커지더니 소용돌이를 만들었다. 마치 태풍이 구름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것 같았다. 점점 커진 소용돌이 속에서 무엇인가 검은 물체들이 내려오고 있었다. 그는 실눈을 뜨며 검은 물체를 쳐다보다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이건 아니야! 환상이라고 했잖아! 내가 만들어 낸 환상이라고!”
그는 뒷걸음질 치다 자기 발에 걸려 뒤로 넘어졌다. 두 손과 발로 바닥을 끌며 뒤로 가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소용돌이 안에서는 점점 더 많은 검은 물체들이 내려오고 있었다. 사람들의 비명, 뛰어가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그는 뒤로 가는 것을 멈추고 자신의 앞에 날개를 펄럭이며 빠른 속도로 내려오고 있는 검은 물체를 쳐다봤다.
언젠가 봤던 놈이었다. 그래. 전봇대 밑에서 마주쳤던 그놈. 녀석은 승재의 앞에 바짝 다가서더니 큰 소리로 포효했다. 그리고는 긴 손톱이 자란 손을 그에게 뻗었고 그는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그 괴물은 승재를 해치는 대신 다치지 않게 조심스레 집어 들고는 자신의 어깨에 태웠다. 그리고는 천천히 뒤돌아 걸어가기 시작했다. 하늘의 소용돌이 속에서는 끝없는 괴물들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었다.
“응?”
오래된 조명의 누런 불빛이 비치는 전봇대 밑, 가득히 쌓인 쓰레기봉투 사이에 무언가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쓰레기봉투를 뒤지는 길고양이라 생각하고 지나치려 했다. 하지만 고양이라고 하기엔 몸집도 컸고 쓰레기봉투를 뒤지는 모양새가 고양이 같지는 않았다. 오히려 체구가 작은 사람이 땅바닥에 착 달라붙어 무언가를 열심히 먹는 모습에 가까웠다.
보통 때 같으면 그냥 지나쳤겠지만 술기운 덕분에 샘 솟는 호기심으로 지나칠 수 없었다. 그는 비틀거리며 쓰레기봉투가 움찔대고 있는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게 뭐지?”
그는 흐릿한 불빛 아래 등을 보이고 이상야릇한 소리를 내며 앉아있는 어떤 생물체를 발견했다. 그게 무엇인지 확인하기 위해 좀 더 가까이 다가섰고 그의 몸은 그 생물체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동물의 소리와는 거리가 먼 이상야릇한 소리를 내던 그것은 조용하고 거대한 그림자가 자신을 덮치는 것을 깨닫고 소리를 멈췄다. 그 생물은 고개를 들고 좌우로 고개를 살짝 돌리며 생각하는듯하더니 갑자기 홱 하고 고개를 돌려 승재를 노려봤다.
“히익! 이게 뭐야!”
그는 단발의 비명을 지르고 몇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괴물. 말 그대로 괴물이었다.
크기는 대략 3~4살 어린아이 정도의 크기였으나 머리가 크고 팔이 몸에 비해 길었다. 다리는 팔보다 상대적으로 짧아 구부정한 모습을 하고 있었고 불빛 때문에 정확한 색은 알 수 없었지만 피부에는 실핏줄이 셀 수 없이 돋아 있었다. 머리털은 없었고 귀는 뾰족했다. 눈은 얼굴의 반을 차지할 정도로 매우 컸고 눈동자는 마치 고양이의 눈과 같았지만 눈꺼풀이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코는 거의 없어 얼굴에 구멍 정도만 붙어 있었으며 입은 귀까지 찢어져 기분 나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몸은 매끈했지만 생식기는 없었다. 그리고 꼬리가 있었는데 바닥을 주기적으로 탁탁 두드렸다. 아무래도 경계의 표현 같았다.
그 괴물은 승재를 쳐다본 후, 마치 가래가 끓는 듯한 소리를 내며 입을 벌렸다. 맙소사. 벌린 입안은 한 마리의 상어를 보는 듯했다. 그것도 성질이 매우 사납다는 백상아리. 이빨 모두 네모지거나 둥근 모습 하나 없었다. 모두 톱날같이 뾰족했으며 길게 찢어진 입 덕분에 그 모습은 더욱 기괴했다.
괴물은 그를 향해 몇 번 더 그르렁거리더니 이내 고개를 돌리고 앞에 있는 무엇인가를 게걸스럽게 먹기 시작했다. 그는 인상을 찌푸리며 한 발 짝 앞으로 다가섰다. 그가 다가서자 괴물은 그를 향해 또다시 가래 끓는 소리를 내며 위협하다 고개를 돌려 재빠르게 맞은편 집 담벼락을 타고 그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의 눈앞에는 괴물이 먹다 남긴 내장이 다 드러난 고양이의 사체가 널브러져 있었고 그는 고개를 돌려 몇 발자국을 걷다 담벼락에 손을 짚고 구토를 하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누군가 그를 봤다면 술에 취한 어떤 남자가 남의 집 담벼락을 변기로 착각하고 토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날 이상한 광경을 목격한 승재는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물론 술김이었지만 끔찍한 가래 끓는 소리와 기괴한 얼굴을 잊을 수 없었다.
그는 출근길에 어젯밤 괴물을 발견한 전봇대 밑을 가봤지만 어디에도 괴물의 흔적은 없었다. 아니, 괴물의 흔적뿐만이 아니라 내장을 다 들어내고 죽은 고양이의 흔적조차 없었다.
환경미화원이 새벽에 치운 것이라고 승재는 생각했다. 기억에 선명하기는 했으나 그 누구도 보지 못한 일을 얘기할 수는 없었다. 자칫하면 괜한 오해만 사서 자기만 이상한 사람으로 몰릴 게 뻔했다. 승재는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지난밤의 일을 자신의 마음속에 묻어 두었다.
며칠이 지나고 승재는 혼자 남겨진 사무실에서 야근을 하고 있었다. 그의 사무실은 땅값 높기로 소문난 서울의 강남 한복판 빌딩의 23층이었다. 승재의 자리는 창가 가장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강남 일대뿐만 아니라 더 먼 지역도 보일 정도로 경치가 매우 좋았다. 승재는 도시가 좋았고 그래서 도심 속에 있는 회사를 택했다.
한참을 집중하던 승재는 키보드에서 손을 뗀 후 하품을 크게 하며 기지개를 켰다. 두 팔을 위로 길게 뻗은 승재의 시선이 자연스레 반대편 건물에 고정됐고 자주 봐오던 건물 벽에 평소에는 보지 못한 어떤 물체가 붙어 있음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잘못 본 것으로 생각하고 일에 집중하려 했지만 도저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다시 건물 벽을 쳐다봤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창문에 두 손을 모아 얼굴을 갖다 댔다. 분명 며칠 전 봤던 그 괴물이었다. 모은 손과 얼굴을 이리저리 옮기며 괴물의 모습을 자세히 볼 수 있도록 노력했고 그는 확신했다. 역시 저번에 봤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괴물은 건물 벽을 긴 두 손과 짧은 두 발을 이용해서 느릿느릿 오르고 있었다. 여전히 얼굴은 기분 나쁜 웃음을 지고 있었고 중간중간 손과 발을 번갈아 가며 얼굴을 긁더니 혼자 키득거리기도 했다. 옥상에 거의 다다른 괴물은 건물 꼭대기 난간을 붙잡고 그네를 타듯이 긴 팔을 이용해서 발을 튕기며 혼자 재미있는 놀이라도 하는 듯 앞뒤로 왔다 갔다 움직였다.
몇 초가 흘렀을까? 혼자만의 시간에 빠져있던 그 괴물은 곧 잠잠해지더니 옥상 난간에 매달린 채 조용히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고개를 돌려 길게 찢어진 입을 벌리고 사나운 이빨을 드러냈다. 두 발을 빠르게 튕기며 승재가 서 있는 방향을 향해 성질을 부리더니 옥상으로 뛰어올라 그의 시야에서 빠르게 사라져버렸다.
그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으며 머리를 감싸 안았다. 도대체 왜 자기에게 저런 괴물이 보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시계를 보니 저녁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이런 시간이라면 강남 한복판에서 저런 괴물을 사람들이 보지 못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뭔가 자기에게 문제가 있는 게 분명했다.
사실 승재는 고등학생 시절 우울증을 앓은 적이 있어 약물치료를 받은 전력이 있었다. 그는 혹시 자신에게 어떤 정신적인 문제가 있지 않을까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괴물은 그 이후로도 승재의 앞에 몇 번 더 나타났고 결국 그는 병원을 찾았다.
두 손을 무릎 위에 얹은 승재는 쉴 새 없이 다리를 떨고 있었다. 두 눈은 접수처 데스크에 앉아있는 두 명의 간호사를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다. 간호사 한 명이 고개를 들어 승재를 쳐다보자 그는 빠르게 눈을 피하고는 자신의 발끝으로 시선을 옮겼다.
잠시 다리 떠는 것을 중단했지만 두 눈이 간호를 번갈아 쳐다보기 시작하자 모터가 달린 마냥 한쪽 다리를 또다시 심하게 떨기 시작했다.
“이승재씨.”
차트를 가슴팍에 안은 간호사가 진료실에서 나오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 승재는 들릴 듯 말 듯 대답한 후 간호사의 안내에 따라 진료실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는 일반적인 병원의 모습과는 매우 달랐다. 유명한 정신과 의사라고 추천을 받아 오기는 했지만 그래도 병원은 병원이겠지 생각했다.
하지만 진료실 안은 마치 대형 인터넷 포털 회사의 근무 환경을 연상케 했다. 원장과 상담할 수 있는 작은 책상 이외에도 마주 보고 이야기할 수 있는 크고 푹신한 소파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있었고 몇 가지 음료들이 소파 옆에 자리 잡고 있었다.
창가 사이사이에는 촛불이 흔들거리고 있었고 초가 타면서 내는 향이 진료실 안을 편안하게 만들어 줬다. 벽 또한 꽤 비싸 보이는 나무로 장식이 되어 있었다. 실내장식에 대해서는 쥐뿔도 몰랐지만 이렇게 색이 짙고 좋아 보이는 나무는 호두나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앉으세요.”
온화한 원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작은 책상 앞에 놓여있는 의자에 앉았다. 원장은 차트를 훑어보더니 승재에게 물었다.
“자꾸 무슨 괴물이 보인다고요?”
승재는 대답 대신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어릴 때 우울증을 앓은 적이 있군요. 하지만 이런 정신적 문제는 어릴 때 우울증 하고는 크게 상관이 없습니다. 근래에 어떤 큰 충격을 받은 적이 있나요?”
이번에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알코올 중독도 아니고 약물 중독도 아닌 분이 그런 이상한 괴물을 본다니 의외군요. 하지만 어떤 병이든 고칠 수 있습니다. 특히 정신적인 병은요. 아, 정신적인 병이라고 이야기 했지만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정신병자를 일컫는 건 아니니 오해하시거나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원장은 자기 자리에서 일어난 후 소파를 향해 몸을 돌렸다.
“자리를 좀 옮길까요? 느긋하게 이야기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군요.”
승재는 푹신한 소파에 몸을 묻었다. 원장은 승재를 향해 질문하기 시작했다.
“언제부터 그 괴물이 보이던가요?”
“한 달이 좀 넘었을 겁니다. 술을 먹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골목에서 본 것이 처음이었어요.”
원장은 술이라는 단어에 “흠”하는 짧은소리를 내뱉으며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때 간호사가 따듯한 차를 두 사람 앞에 내려놓고 사라졌다. 두 사람은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대체로 원장이 질문하고 승재는 대답하는 형식이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원장은 승재에게 처방을 내렸다.
“아무래도 우리 승재씨는 강박증에 시달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떠한 이유로 그런 괴물이 보이는지는 조금 더 치료하면서 알아보도록 하죠. 오늘 약 처방을 드릴 겁니다. 이 주일 후에 다시 오시고 혹시 그 안에라도 무슨 일이 있다면 연락하고 찾아주시기를 바랍니다.”
승재는 고맙다는 인사를 한 후 병원을 나섰다. 누군가에게 고민을 털어놨지만 마음 한구석은 여전히 불안했다.
그가 병원 앞에서 한숨을 쉴 때 버스 한 대가 지나가고 있었는데 지붕 위에서 그 괴물이 기괴한 웃음을 지으며 그에게 손을 흔들어 댔다. 이제는 나에게 아는 체까지 하는 것인가? 승재는 머리를 흔들며 모두 환영에 불과하다고 마음속으로 소리쳤다. 그는 고개를 들어 버스 위를 쳐다봤다. 막 자리를 떠나는 버스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병원에서 처방해 준 약을 꾸준히 먹으면서 하루하루를 버텨갔다. 며칠간은 그 녀석이 정말 승재의 눈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딱 삼 일이었다. 그 이후로 여전히 그 녀석은 승재의 눈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그가 정말이지 큰일 났다고 생각하는 한 사건이 일어나게 된다.
“망할 놈의 괴물. 오늘은 기필코 네 녀석을 내 앞에서 없애 주겠어.”
그는 마음을 굳게 먹고 괴물이 눈앞에 나타나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처음에 그가 괴물을 발견했던 전봇대 밑. 그날따라 달빛이 구름에 가려 전봇대의 조명에만 의지해야 했다.
그 녀석은 마치 승재를 기다렸다는 듯이 쓰레기봉투 사이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가 전봇대에 다다르자 그의 그림자가 괴물을 감싸 안았다. 그는 자신의 앞에서 천진난만하게 뛰고 있는 괴물의 목을 낚아챘다. 그리고는 신경질적으로 앞뒤로 흔들어 대며 소리쳤다.
“네놈! 네놈 때문에 미치겠어! 넌 환상이라고! 이 약병 보여? 다 너 때문에 먹는 거라고! 그러니까 제발 내 앞에서 꺼져!”
그는 한 손에 들고 있던 약병을 바닥에 던졌다. 약병은 바닥에 떨어지며 많은 알약을 내뱉었다. 알약을 흘린 약병은 또르르 소리를 내며 조용한 골목길에 작은 소음을 냈다.
하지만 괴물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저 긴 입을 양옆으로 벌리며 기분 나쁘게 웃고 삐죽한 이빨을 드러낼 뿐이었다. 그는 너무 화가 난 나머지 그 괴물을 담벼락에 퍽 소리가 나게 던져버렸다. 괴물은 단발의 비명과 함께 담벼락에 부딪히더니 축 늘어져 버렸다. 그는 천천히 걸어가 놈이 죽었는지 확인하려고 쪼그려 앉았다.
그때 그의 뒤에 거대한 그림자가 나타났다. 그는 쪼그린 채 고개를 돌려 자신의 뒤를 쳐다봤다. 엄청난 놈이었다. 자신이 내던진 이놈하고는 차원이 달랐다.
키는 자기보다 세 배는 커 보였고 손발은 스치기만 해도 죽을 것 같은 손톱이 자라나 있었다. 두 눈은 이글거리고 있었고 찢어진 입에서 뿜어 나오는 악취 때문에 기절할 정도였다. 이빨은 황소도 씹어 먹을 만큼 날카로웠고 등 뒤에는 거대한 날개까지 있었다.
그는 너무 놀라 조그만 괴물을 집어 던진 담벼락에 등을 기댔다. 하지만 조금 전 그가 내던진 그놈은 그 자리에 없었다. 조그만 괴물은 어느새 거대한 괴물의 다리를 기어올라 그것의 어깨에 올라타서는 가래 끓는 소리와 함께 기분 나쁜 웃음소리를 냈다.
거대 괴물은 승재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가까이하더니 몸 안의 모든 내장이 떨릴듯한 낮은 소리로 으르렁댔다. 그는 숨을 참으며 두 귀를 꽉 틀어막았다. 한참을 씩씩거리며 거친 숨을 내뱉던 거대 괴물은 고개를 한두 번 갸웃하더니 그에게서 서서히 멀어져 갔다. 그러더니 작은 괴물을 어깨에 얹은 채로 뒤를 돌아 천천히 골목길을 빠져나갔다.
그가 손을 내밀며 “안돼”를 외치고 있었지만 들은 채 만 채 그 거대 괴물은 골목 밖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는 엉금엉금 기어 바닥에 떨어진 약을 한 움큼 쥐고는 입에 마구 쑤셔 넣고 우적우적 씹었다. 그가 약을 채 삼키기도 전에 희미한 달빛 사이로 무언가가 큰 날개를 펼치고 허공을 가르며 날아가는 모습을 봤고 그는 정신을 잃고 말았다.
시끄러운 기계음이 들렸다. 눈을 뜨자 환경미화원들이 쓰레기봉투를 청소차에 싣고 있었고 청소차 뒤편의 기계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쓰레기봉투를 마구 삼키고 있었다. 한 청소부가 그의 옆에 있는 쓰레기봉투를 치우며 불쌍하다는 듯이 그를 쳐다봤다.
승재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난 후 비틀거리며 집을 향해 걸었다. 약을 과다하게 먹어서인지 감기 걸린 것처럼 머리가 띵했다. 도대체 어젯밤에 그건 뭐지? 정말 내가 미쳐가는 건가? 만약에 실제 하는 거라면? 그럼 난 어떻게 되는 거지? 아니, 그것들은 왜 온 거지? 이러다 내가 죽는 게 아닐까? 강박 관념에 시달리면 죽을 수도 있다고 하던데. 내가 정말 그런 걸까? 그는 비틀거리며 걷다 무슨 생각이 났는지 발길을 돌려 택시를 타고 어딘가로 향했다.
병원 앞 계단에 초췌한 모습의 그를 발견한 건 제일 먼저 출근한 간호사였다. 그녀는 그를 발견하고는 너무 놀라 건물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승재는 놀란 기색 하나 없이 게슴츠레한 눈으로 그녀를 쳐다볼 뿐이었다.
간호사의 연락을 받고 부리나케 달려온 원장은 승재의 상태를 보고 그의 상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원장은 승재를 안정시키고 그와 대화를 시도했으나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자신 앞에 놓여있는 흰 종이에 거대한 괴물만 그리고 있을 뿐이었다. 원장은 그를 되돌려 보내고 좀 더 강력한 처방을 내렸다. 그리고 상황이 심각해지면 그의 가족들에게 연락해 정신병원에 보내는 것을 권고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승재는 하루하루 약에 의존하며 힘들게 버텨갔다. 하지만 그의 눈앞에는 여전히 괴물이 나타났다. 하지만 괴물은 그의 눈에만 보일 뿐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았다.
분명 이건 정신적인 문제였다. 그도 자기 자신의 상황에 대해 객관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다 환상일 뿐이라고. 과도한 스트레스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하지만 자신도 확신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날이 갈수록 괴물이 눈에 보이는 빈도는 높아졌고 종류도 다양했다.
팔다리가 두 개도 모자라 네 개씩 달린 놈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마치 우주 끝 지옥에서 온 괴물들 같았다. 하지만 웬일인지 자기 자신에게 어떠한 해도 끼치지 않았다. 생김새로 보면 승재 자신을 금방이라도 잡아 먹을듯한 생김새를 한 괴물들이었지만 그에게는 어떠한 해도 끼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괴물들이 나왔다고 해서 주변에 어떠한 일들이 일어나지도 않았다.
하지만 주변에 어떠한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 그에게는 더 큰 고통이었다. 누구도 동정해주지 않고 혼자 속으로 앓는 꼴이었다.
그는 괴물의 실체가 역시 자신의 강박 관념에서 나온 환상이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정기적으로 병원을 오가며 약을 꾸준히 먹고 괴물을 이기기 위해 노력했다. 공든 탑은 무너지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승재의 공든 탑은 무너져 내렸다.
그의 강박 관념이 극에 달한 그 날. 그날은 승재가 승자이자 패자가 된 날이기도 했다. 어떤 면으로는 그에게 새로운 생명을 안겨준 날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지옥을 보게 될 인간을 만든 날이기도 했다.
회사에서 근무 중 그는 머리도 식힐 겸 포털의 뉴스를 보고 있었는데 아주 흥미로운 뉴스 하나를 발견했다. 남미에서 아주 오래된 화석이 발견됐는데 지구상에 살았던 생물의 모습과는 판이하다는 기사였다. 그는 꽤 흥미로운 뉴스라며 화면의 스크롤을 습관적으로 내리기 시작했고 그의 눈에 한 장의 사진이 눈에 띄었다. 자세하지 않았지만 분명 그는 알아볼 수 있었다.
분명 그놈이었다. 삐죽한 이를 내보이며 그에게 기분 나쁜 웃음을 짓던 그놈. 노란색 조명이 비치는 전봇대 밑에서 고양이를 게걸스럽게 먹던 그놈. 그 화석에서 발견된 건 바로 그놈이었다.
그는 기사의 스크롤을 멈췄다. 두 다리가 떨리고 손가락은 마비되고 있었다. 지금 그가 고개를 돌리면 그 녀석이 삐죽한 이빨을 내놓고 그를 향해 뛰어올 것만 같았다. 그는 눈을 질끈 감았다. 현실이 아니라고 백 번은 외쳤다. 그래 이 사진은 내가 잘못 본 것이다. 내가 겁먹은 나머지 오래전 화산재에 묻힌 동물의 모습을 보고 그놈이라고 착각한 것이다. 그는 마음속으로 자신을 격려하며 눈을 떴다.
왜 현실은 자기가 마음먹은 대로 흘러가지 않을까? 모니터 위에는 그를 향해 웃는 그놈이 앉아있었다. 찢어진 입 사이로 삐죽한 이빨을 드러내고 씩 웃은 채.
그는 자리를 박차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회사 사람들이야 뭐라 그러든 상관없었다. 이제 자신은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주머니에 들어있던 약병도 집어 던졌다. 이제 이따위 약도 필요 없었다. 그는 미친 게 너무 분명했다. 그래 나는 미친 거다.
그의 머릿속에는 정신병원이나 교도소에서 쓰는 억압복에 묶여 있는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독방에 갇혀서는 매일매일 괴물이 나타났다고 떠드는 모습도 보였다. 그럴 때마다 흰 병원복을 입은 건장한 사내 몇이 와서는 자신에게 주사를 놓고 가는 모습도 보였다.
그래 나는 미친놈이다. 이제야 마음이 편했다. 처음부터 이러면 될 것을 왜 그렇게 고생했을까? 왜 그놈의 괴물을 만나고 팔다리가 두 개도 모자라 네 개가 달린 놈을 눈앞에 만들어 냈을까?
그는 한참을 뛰어가다 숨을 헐떡거리며 거리 한가운데 섰다. 두 손을 무릎에 얹은 채 숨을 고르다 큭큭 거리며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그를 슬슬 피했다. 어떤 사람들은 핸드폰으로 그의 모습을 찍기도 했다. 몇 사람들은 멀찍이 서서 수군덕댔다. 평소 같으면 화를 내야 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점점 더 크게 웃었다.
한참을 웃던 그가 하늘을 쳐다봤다. 저 멀리 붉은 반점이 보였다. 이제는 하늘까지 이상하게 보이나? 이젠 정말 미쳐가는군. 그는 하늘을 쳐다본 채 입을 반쯤 벌리고 붉은 반점을 쳐다봤다. 그 반점은 점점 커지더니 소용돌이를 만들었다. 마치 태풍이 구름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것 같았다. 점점 커진 소용돌이 속에서 무엇인가 검은 물체들이 내려오고 있었다. 그는 실눈을 뜨며 검은 물체를 쳐다보다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이건 아니야! 환상이라고 했잖아! 내가 만들어 낸 환상이라고!”
그는 뒷걸음질 치다 자기 발에 걸려 뒤로 넘어졌다. 두 손과 발로 바닥을 끌며 뒤로 가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소용돌이 안에서는 점점 더 많은 검은 물체들이 내려오고 있었다. 사람들의 비명, 뛰어가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그는 뒤로 가는 것을 멈추고 자신의 앞에 날개를 펄럭이며 빠른 속도로 내려오고 있는 검은 물체를 쳐다봤다.
언젠가 봤던 놈이었다. 그래. 전봇대 밑에서 마주쳤던 그놈. 녀석은 승재의 앞에 바짝 다가서더니 큰 소리로 포효했다. 그리고는 긴 손톱이 자란 손을 그에게 뻗었고 그는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그 괴물은 승재를 해치는 대신 다치지 않게 조심스레 집어 들고는 자신의 어깨에 태웠다. 그리고는 천천히 뒤돌아 걸어가기 시작했다. 하늘의 소용돌이 속에서는 끝없는 괴물들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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