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
진영은 퇴근길 기분이 매우 좋았다. 아까부터 싱싱한 굴 냄새가 코를 자극했기 때문이다.
‘오늘 저녁은 굴 국일까? 굴 전?’
집에 도착한 진영은 아내가 차려놓은 밥상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역시 밥상 위에는 싱싱한 굴로 끓인 시원한 국이 올라와 있었다.
진영은 어릴 적부터 남다른 능력이 있었는데 그건 향기로 무언가를 맞출 수 있는 능력이었다. 대부분 음식에 관한 예측이 많았고 간혹 사람의 방문이나 사고를 맞추기도 했다.
일반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인간은 모두 특유의 향기가 났다. 몸에 뿌리는 향수나 머리에서 나는 샴푸의 향기가 아니었다. 나를 증명할 수 있는 신분증이 한 개만 존재하듯 사람에게는 그만의 향이 존재했다. 그래서 그런 사람이 집에 찾아오기라도 하는 날에는 그 향기가 코끝에 맴돌았다. 사고도 마찬가지였다. 길을 가다 타는 냄새가 나면 잠시 후 그 주변 건물에서 불이 났고 차를 타고 가다 기름 냄새가 나면 잠시 후 사고가 나곤 했다.
하지만 진영은 이런 능력을 절대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음식이야 코가 좀 민감하다는 말을 들을 수 있지만(그렇더라도 차려질 음식을 맞추는 건 말이 안 된다) 찾아올 사람이나 사고를 미리 맞추는 건 미쳤다는 소리만 들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건 세상 물정 모르는 꼬마도 알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 그가 이상한 향기를 맡은 건 어느 날 출근길 아침이었다. 지하철에 앉아 핸드폰을 보고 있는데 오묘한 향이 그의 코끝을 자극했다. 그런데 그 향기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맡아온 향이 아니었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시큼하면서도 무거운 공기가 한데 섞여 어딘지 모를 방향으로 흘러가는 그런 느낌이었다. 이걸 향이라고 할 수 있나 싶을 정도의 불쾌감이 머릿속을 감돌았다.
진영은 고개를 들고 주변을 둘러봤다. 간혹 노숙자들이 지하철에 올라 노숙 생활에 찌든 냄새를 풍겨 눈살을 찌푸리게 했지만 그들도 눈치가 있기에 이른 출근 시간에는 거의 타지 않았고 사실상 그런 냄새도 아니었다. 사라지지 않는 향기는 불쾌한 감정을 넘어 온몸에 전율이 흐르고 닭살이 돋는 공포로 변해갔다.
그는 부르르 떨리는 팔을 쓰다듬으며 이리저리 눈알을 굴리고 주변을 둘러봤다. 여느 일상과 다름없는 출근길 아침이었다. 어깨를 으쓱하며 다시 고개를 숙이고 핸드폰 화면을 쳐다보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 향기는 없어졌다. 그리고 진영은 금세 향기에 대해 잊어 버렸다.
진영이 다시 그 향기의 존재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 건 저녁 식사를 마치고 아내와 함께 커피를 마시며 TV를 보던 중이었다. 진한 커피 향을 맡아야 할 자신의 코는 저번에 느꼈던 그 이상야릇한 향기를 기억해 내고 있었다. 이게 무슨 냄새지? 아! 지하철에서 맡았던 그 향이잖아? 근데 집에 있는데 왜 이런 냄새가 나지?
“요즘 집에 무슨 일 있어?”
진영은 아내에게 물었다.
“응? 별일 없는데? 왜?”
“아니, 그냥… 어제 꿈자리가 좀 뒤숭숭해서 물어봤어.”
진영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아내에게 대답했다. 하지만 이번엔 향기의 존재에 대해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시큼하면서도 차갑지만 무거운 느낌, 어둡고 좁은 밀폐된 공간에서 신선한 공기가 인간의 오염된 숨으로 채워지고 그 나쁜 공기의 밀도가 점점 높아져 결국 제대로 숨도 쉬지 못하고 폐가 굳어져 숨이 멈추는 느낌이었다. 그는 머그잔에 입을 댄 채 잠시 숨을 멈췄지만 그 향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는 아내가 눈치채지 못하게 서서히 숨을 내뱉었다.
그는 잠자리에 들어서도 쉽사리 잠을 청할 수 없었다. 그에게 이번 향기는 기분 좋은 예측이 아니라 어딘지 모르게 그를 죄어오는 공포였기 때문이었다.
며칠 후 그는 아내와 함께 바람도 쐴 겸 동네 공원을 찾았다. 한적한 길을 걸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지나가던 개 한 마리가 진영을 쳐다보더니 마구 짖기 시작했다. 개의 주인은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개의 목줄을 강하게 끌어당겼다. 하지만 개는 물러서지 않고 진영을 향해 큰 소리를 내며 짖어댔다.
진영은 아내와 개를 번갈아 쳐다본 후 난처한 얼굴을 했다. 개의 주인은 정말 미안하다며 평소에 이렇게 짖는 개가 아닌데 오늘따라 이상하다고 사과했다. 진영은 괜찮다고 말하며 아내와 함께 빠른 걸음으로 개에게서 멀어졌다.
얼마나 걸었을까? 그는 고개를 살짝 돌려 그 개를 쳐다봤다. 개는 주인과 함께 총총걸음으로 진영에게서 멀어지고 있었지만 진영은 멀어지는 개에게서 불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개가 왜 그랬지?”
진영의 아내는 그를 쳐다보며 물었다.
“글쎄… 내가 무서웠나? 나 나쁜 사람 아닌데. 동물들도 좋아하고 말이지.”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당신한테 이상한 냄새 나는 거 아냐?”
아내가 말하자 진영은 팔의 옷깃을 끌어 코에 대고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좋은 냄새만 나는데 뭘.”
그는 싱겁게 웃어 주고는 아내의 어깨를 감싸고 가던 길을 재촉했다.
눈을 뜬 시각은 새벽 4시가 좀 넘어서였다. 식은땀으로 범벅이 된 그는 거친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그리고 모든 사물이 어렴풋이 보이는 불 꺼진 자신의 신혼 방 침대 위에서 이불을 반만 덮은 채 우두커니 앉아 있는 그의 코에서는 향기가 나기 시작했다. 또 그 향이었다.
그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베란다로 나갔다. 밤기운의 찬 공기가 그의 얼굴을 감싸고 지나갔다. 밤바람은 땀을 흘린 뒤라 더욱더 시원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런 바람에도 불구하고 기분 나쁜 그 향기는 밤기운의 찬 공기와 함께 날아가지 않았다. 여전히 그의 코와 뇌를 자극하고 있었다. 이제는 더 진하고 가깝게 느껴졌다. 도저히 향기의 정체를 알 수가 없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향기로 일어날 일들에 대해서 많이 맞춰 왔지만 이번만은 알 수 없었다.
향기의 근원조차 찾을 수 없었을뿐더러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향이었다. 시체가 썩는 냄새라 할지라도 이것만큼 기분이 나쁘진 않을 것 같았다. (물론 맡아본 적은 없다) 그럴 정도로 이번 향기는 오랫동안 진영을 괴롭히고 있었다.
진영은 날이 갈수록 수척해졌다. 향기는 점점 더 빈번하게 그에게 다가왔고 그럴수록 그는 크나큰 고통과 공포에 몸서리를 쳐야 했다. 그의 아내는 남편의 건강을 걱정해 이 병원 저 병원을 같이 다녔지만 호전되는 모습이 보이지 않자 어찌할 바를 몰랐다.
급기야 그는 다니던 회사마저 관두게 됐고 하루하루를 술에 의존했다. 그의 능력을 모르는 아내는 진영의 진짜 고통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녀는 그를 정신병원에 입원시켜야 하나 고민도 했지만 자신의 남편을 그런 곳에 넣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오히려 진영이 이런 아내의 생각을 읽고 있었다는 듯 자진해서 정신병원에 입원을 해버렸다.
진영은 상담실 안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오늘은 유명한 심리학 박사가 면담을 온다고 했다. 진영은 병원 내에서도 유명했다. 정신병자들 사이에서 그는 여러 가지 미래의 일들을 말해 주었고 환자뿐만 아니라 병원 직원들조차도 그의 말에 매우 놀라 했다. 그는 그런 유명세와는 다르게 심적으로 엄청난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 하루하루 향기가 그의 목을 죄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쇠창살이 쳐진 창문 밖을 바라보며 어쩌면 이런 상황이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분명 향기는 미래를 말해 주고 있지만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향기는 진영을 계속해서 괴롭히고 있었지만 그의 주변에선 그 향기와 관련된 어떠한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은 결국 자신을 파멸로 몰아가는 길밖에는 되지 않기 때문이다. 향기가 나를 파멸로 몰아가는가? 정말 향기는 나 자신의 미래를 보여주기 위해 찾아온 것인가? 머리가 아프다. 코를 베어버리면 향기를 맡을 수 없을 텐데.
그때 문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중년의 한 남성이 상담실 안으로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박상철 박사라고 합니다. 오늘 심리 면담이 있는 건 아시죠?”
그는 쓰고 있던 중절모를 머리에서 벗어 진영이 앉아 있는 자리 앞 책상에 모자를 내려놓고는 자신도 진영의 앞자리에 앉았다. 병원 직원 한 명이 진영의 상태를 감시하기 위해 문 옆에 서서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여기서 유명하시더군요.”
그는 들고 온 서류 가방에서 서류 봉투를 꺼내며 물었다.
“본의 아니게 그렇게 됐습니다. 미친놈이 헛소리하는데도 유명해질 수 있다는 게 좀 웃기지만요.”
그는 씁쓸하게 웃고는 박사를 쳐다봤다. 깔끔하게 면도 된 얼굴은 세월의 깊이를 알 수 있는 주름이 깊게 패 있었다. 하지만 그런 나이와는 다르게 꼿꼿하고 눈빛이 강렬했다. 말 그대로 굉장한 카리스마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박사는 책상 위에 진영의 신상정보가 담긴 파일을 펴 놓고 휴대용 녹음기를 책상의 가운데 내려놓으며 물었다.
“녹음 괜찮죠?”
박사는 녹음기의 빨간 버튼 위에 손가락을 올려놓고 물었다.
“물론이죠.”
진영이 대답하자 박사는 버튼을 눌렀다. 테이프가 빙글빙글 돌아가는 게 보였다. 요즘 세상에도 저런 아날로그 녹음기를 쓰다니. 신기한 사람이었다.
“대다수 정신병자는 자신이 미쳤다고 하지 않습니다. 살인자가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하듯이 말이죠. 물론 뇌가 손상돼서 자신의 의견을 낼 수 없는 사람들은 예외입니다. 그런데 홍진영씨는 좀 다르더군요. 자신을 미쳤다고 또는 미치지 않았다고 일언반구 하지 않고 이곳의 생활에 순응하면서 살고 있어요. 왜죠? 난 여러 환자를 봤지만 홍진영씨 같은 환자는 본 적이 없습니다. 무슨 이유라도 있습니까?”
“이유요? 그런 건 없습니다. 그냥 여기 있는 게 안전할 거 같아서요.”
“안전이요? 누가 해치기라도 한단 말입니까?”
진영은 지금까지 겪어온 자신의 특별한 능력과 상황들에 대해서 박사에게 설명했다. 물론 박사도 다 믿는 눈치는 아니었지만 부정적인 태도를 직설적으로 내보이지는 않았다.
“그럼 홍진영씨는 결국 미래를 알 수 있다는 말이군요. 맞습니까?”
“그런 셈이죠. 향기로 알 수 있는 상황들에 대해서는 제가 다 맞췄으니까요.”
그는 귀찮은 일상을 얘기하듯이 건성으로 대답했다. 하지만 박사는 그에게서 점점 흥미를 더해가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맡는 향기는 도저히 알 수가 없는 향기란 말이군요. 인간으로서 맡아보지 못한 향기. 비교할만한 향이라도 있습니까?”
그는 매우 궁금하다는 듯이 진영을 재촉했다.
“비교할만한 향이라… 글쎄요 저한텐 너무나 어려운 질문이군요. 이 향은 말씀하신 것처럼 인간인 내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맡아보지 못한 향입니다. 하지만 느낌은 말할 수 있겠군요. 이 향기를 맡는 순간 모든 생각이 사라지고 온몸은 공포로 가득 차게 됩니다. 그렇다고 어떤 형상이 머리에 그려지는 것도 아닙니다. 머릿속은 그저 새하얗게 변해버리죠. 그래도 저는 알 수 있습니다. 지독한 공포와 저를 짓누르는 무거운 힘을 말이죠. 마치 우주 저 끝에서 저를 잡기 위해 오는 어떤 미지의 존재 같아요. 꿈속에서 달리려고 하면 다리가 더 무거워지고 땅으로 꺼지는 느낌을 받죠? 저는 하루하루가 그렇습니다. 이제는 늪 속에 몸뚱이는 다 빠지고 얼굴만 겨우 나와 숨을 쉬는 것 같습니다. 그나마 숨을 쉴 수 있는 얼굴이 빠지지 않도록 이 안에서 안전하게 있는 거죠.”
박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홍진영씨는 그 향이 곧 나를 덮쳐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건가요?”
“네, 아마 박사님은 결국 저를 미쳤다고 하겠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어쩌면 저는 미친 게 맞을지도 몰라요. 이 병이 깊어지면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르죠. 내 안전도 안전이지만 주변 사람들의 안전도 생각해야 했어요.”
그는 이야기를 마치고 그 향이 생각나는 듯 몸서리를 쳤다. 박사는 오늘은 이쯤에서 하고 다음에 다시 오겠노라며 약속을 한 후 돌아갔다. 병실에 돌아온 진영은 침대에 누워 곰곰이 생각했다. 앞으로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이 향기는 언제까지 지속이 될지. 끝없는 공포와의 싸움은 언제 끝날지. 그는 서서히 감기는 눈을 의식하지 못한 채 잠에 빠져들었다.
그 후 박사는 진영을 몇 번 더 방문했다. 첫 번째 만남 이후 더는 진영에게서 특별한 점은 찾을 수 없었지만 박사는 진영을 찾아오는 것에 대해 큰 의미를 두고 있었다. 그는 진영과의 상담을 학문적으로 다가가지 않았다. 분명 진영의 능력은 진짜였다. 하지만 박사 자신도 진영이 지금 맡고 있다는 향기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었다. 그 비밀을 풀기 위해서는 진영을 지속해서 만나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진영과 박사는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다.
3개월 후, 진영은 병원 관계자로부터 한 소식을 접했는데 이제 박사는 오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가 이유를 묻자 병원에서는 박사가 몸이 안 좋아져서 병원을 올 수 없다고 그에게 설명했다. 물론 그런 정도의 나이를 먹은 박사이긴 했지만 며칠 전까지 아무 탈 없이 병원을 방문 한 사람이? 그렇게 강직하고 꼿꼿한 사람이? 뭔가 이상했다. 하지만 병원 내부에서는 밖의 일을 알 수 없었기에 오지 않는 박사에 대해서는 더 다른 정보를 알아낼 수 없었다.
그런데 그 소식을 접한 후로 병원 내부는 이전보다 다른 움직임을 보였다. 병원 관계자들이 마스크와 위생장갑을 꼭 가지고 다닌다던가, 소독이란 건 하지도 않던 병원이 주기적으로 병실을 소독한다던가, 환자들의 위생 상태를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꼼꼼히 검사한다던가, 이상한 점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는 아내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의 상황들이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걸 확신 할 수 있었다.
“나야, 여보.”
아내의 힘든 목소리가 수화기를 타고 전해졌다.
“당신 목소리가 왜 그래? 어디 아파? 왜 그러는데?”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아내의 안부를 물었다.
“아니, 나 괜찮아. 그냥 좀 아파… 근데 병원에서도 어디가 아픈지 모르겠데. 일단 약은 지어왔으니까 좀 두고 보면 알겠지. 내 걱정은 말고… 당신은 잘 지내지? 요즘도 여전히 잠 못 자고 그래?”
그녀는 힘겹게 말을 이었다.
“똑같지 뭐. 박사가 오지 않은 이후로는 이곳 생활도 다시 재미가 없어졌어.”
그는 수화기의 선을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당신이 빨리 병원에서 나와야 할 텐데. 나 때문에….”
아내의 목소리는 이어지지 않았다.
“무슨 소리야! 난 여기 내 발로 들어온 거야. 당신 탓이 아니라고. 그리고 이건 나와 당신을 위해서라도 해야 할 일이야. 조만간 나가게 될 거야. 다시 말하지만 여긴 내 발로 들어온 데라고. 그러니 내가 안전하다는 생각이 들면 내 마음대로 나갈 수 있어. 그땐 우리 둘이 멀리 여행 가자. 모두 잊고. 알았지?”
그는 목소리에 힘을 실으며 아내를 격려했다.
“그래 여보. 우리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여행 가자.”
그는 아내와 전화를 끊은 후 한동안 말없이 서 있었다. 정말 그런 날이 오는 걸까?
병원 내부에 이상한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 건 아내와의 통화가 있던 날로부터 3일 뒤였다. 병원 직원들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줄고 있었다. 게다가 나이 든 환자들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병원의 그런 상태가 심해질수록 향기는 그를 더욱더 죄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진영 자신도 한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그 향기로 인해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일주일 후. 아침에 눈을 뜬 진영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병원 내부는 여느 때 보다 조용했다. 그는 병실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복도를 거닐었다. 당연하게도 있어야 할 환자들은 한 명도 없었다. 병원 데스크의 직원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병원 여기저기를 둘러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그는 지하실을 가보기로 했다. 그곳은 평소엔 환자들의 출입이 통제된 곳이었는데 그날따라 육중한 철문이 열려 있었고 진영은 붉은 조명이 새어 나오는 그곳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헉!”
그는 단발의 소리를 지르며 뒤로 물러섰다. 병원에서 봐왔던 사람들이 시체가 되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마치 수레에서 한 사람 한 사람, 실어 온 순서대로 털어낸 것 같았다. 그는 산더미처럼 쌓인 시체들 앞에 고개를 떨어뜨리고 죽어있는 병원 직원의 시체를 발견했는데 그의 손에는 쪽지가 한 장 들려있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시체의 손에서 쪽지를 빼 들었다. 거기엔 필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조잡하게 쓴 글이 남겨져 있었다.
“환자들뿐만 아니라 병원 직원들도 죽기 시작했다. 정부에선 이번 사건에 대해 어떠한 원인도 밝혀내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린 알고 있다. 떠도는 소문이 뜬소문만은 아닐 것이다. 무취, 무색의 살인 가스를 개발한 정부의 만행이라는 것. 그들도 이젠 돌이킬 수 없을 것이다. 가스의 살포가 사고였든 고의였든. 이제는 모두 다 죽는 수밖에 없다. 나도 얼마 안 남은 것 같다. 병원에 남은 몇몇 사람들도 곧 죽겠지. 누군가 우리를 발견한다면 태워서 재를 뿌려주기를 바란다. 누군가 살아 있다면.”
그는 손에서 쪽지를 떨어트리고는 문을 박차고 지하실을 뛰쳐나갔다. 병원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 세상은 너무나도 적막했다. 사람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병원으로 뛰어 들어가 데스크 위에서 차 키를 찾기 시작했다. 누구의 키인지 모르겠지만 자동차 키를 발견한 그는 주차장으로 간 후 키의 버튼을 마구 누르기 시작했다. 저 멀리 방향지시등이 깜박거리며 소리를 내는 SUV 한대가 눈에 띄었고 그는 차에 올라 시동을 걸고 미친 듯이 운전하기 시작했다. 목적지는 아내가 있는 자신의 집이었다.
차를 몰고 가는 내내 사람이라고는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아내만큼은 살아 있으리라 굳게 마음먹고 엄청난 속도로 집을 향해 달렸다. 도로 위에도 차는 한 대도 없었기 때문에 운전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깨끗한 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와 같이 편치만은 않았다.
그는 집에 들어서서 아내의 이름을 외쳤지만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불길한 예감을 뒤로 한 채 안방 문을 열었을 때 그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구역질하기 시작했다. 침대 위에는 반쯤 썩어버린 자신의 아내가 그를 반겨주고 있었다.
“아아악!”
그는 집을 뛰쳐나가며 소리쳤다. 그리고는 여기저기 아무 집이나 마구 들어갔다. 대부분 빈집이었고 자신의 아내처럼 집에서 죽어 간 사람들도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이길래 사람들이 죽었고 썩은 시체에 파리 한 마리도 나타나지 않는다 말인가.
그는 차를 몰고 미친 듯이 도시를 마구 돌아다녔다. 3시간을 돌아다녔지만 살아있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길 중앙에 차를 세우고는 핸들에 손을 얹은 채 생각했다. 일단 이런 일이 벌어진 원인을 찾아야 했다.
그래서 가까운 PC방을 찾아 들어갔다. 다행히 컴퓨터들은 작동하고 있었고 인터넷도 잘 됐다. 인터넷에서 그가 찾은 기사는 참으로 기가 막힌 내용뿐이었다.
어느 날 알 수 없는 병이 사람들을 습격했는데 보건 당국도 손을 쓸 수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 병이 신종 화학무기 개발에 쓰였던 가스가 대량으로 살포돼서 그렇다는 기사도 있었다.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사람들은 병에 걸려 죽은 게 확실했다. 그리고 진영이 병원에서 나온 후 지금까지의 상황으로 보면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생물이 다 죽은 듯했다. 그럼 자연적인 병은 아닐 터. 소문이든 아니든 그는 인위적인 어떤 물질에 노출된 인류가 저주받은 것이라고 결론을 지었다. 그러다 문득 진영은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런데 나는? 나는 왜 살아 있는 거지? 왜! 왜!”
그는 모니터 앞의 키보드를 두 손으로 쾅쾅 내리쳤다. 심지어는 자신의 앞에 놓여 있는 모니터를 집어 다른 곳으로 던져 버렸다. 그리고는 그곳의 모든 모니터를 뽑아 들고는 여기저기 미친 사람처럼 던지기 시작했다. 한참을 그렇게 미친 사람처럼 물건을 부수던 진영은 손에 들고 있던 모니터를 턱 하니 내려놓고는 밖으로 나갔다.
그는 아무도 없는 황량한 거리를 비틀거리며 걸었다. 조명이 들어온 도시 한복판의 도로는 한적했다. 그는 걸으면서 생각했다. 자신을 괴롭히던 향기. 무한의 공포로 몰아넣던 그 향기의 정체는 바로 지금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미래였다는 것을.
진영은 갑자기 미친 사람처럼 웃기 시작했다. 점점 더 크게 웃더니 이제는 아예 도로 위에 대 자로 눕고는 미친 듯이 웃어댔다. 아무도 없는 도로 한복판의 밤하늘은 적막하기만 했다.
흰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진영이 누워있는 캡슐을 관찰하고 있었다. 캡슐의 상단에는 빨간 글씨로 CP-32 라고 적혀 있었고 중간에 노란 종이가 붙어있었다. 이런 주의사항과 함께.
“실험체 32번. 성인 남성. 질병 코드 제로. PGV536 신경가스 투입 후 무의식중에 향기로 느끼는 반응에 대한 조사는 완료되었음. 간헐적인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긴 하지만 우려할만한 수준은 아님. 모든 자료가 정리되는 대로 실험체 32번은 소각, 폐기 처분함.”
‘오늘 저녁은 굴 국일까? 굴 전?’
집에 도착한 진영은 아내가 차려놓은 밥상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역시 밥상 위에는 싱싱한 굴로 끓인 시원한 국이 올라와 있었다.
진영은 어릴 적부터 남다른 능력이 있었는데 그건 향기로 무언가를 맞출 수 있는 능력이었다. 대부분 음식에 관한 예측이 많았고 간혹 사람의 방문이나 사고를 맞추기도 했다.
일반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인간은 모두 특유의 향기가 났다. 몸에 뿌리는 향수나 머리에서 나는 샴푸의 향기가 아니었다. 나를 증명할 수 있는 신분증이 한 개만 존재하듯 사람에게는 그만의 향이 존재했다. 그래서 그런 사람이 집에 찾아오기라도 하는 날에는 그 향기가 코끝에 맴돌았다. 사고도 마찬가지였다. 길을 가다 타는 냄새가 나면 잠시 후 그 주변 건물에서 불이 났고 차를 타고 가다 기름 냄새가 나면 잠시 후 사고가 나곤 했다.
하지만 진영은 이런 능력을 절대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음식이야 코가 좀 민감하다는 말을 들을 수 있지만(그렇더라도 차려질 음식을 맞추는 건 말이 안 된다) 찾아올 사람이나 사고를 미리 맞추는 건 미쳤다는 소리만 들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건 세상 물정 모르는 꼬마도 알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 그가 이상한 향기를 맡은 건 어느 날 출근길 아침이었다. 지하철에 앉아 핸드폰을 보고 있는데 오묘한 향이 그의 코끝을 자극했다. 그런데 그 향기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맡아온 향이 아니었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시큼하면서도 무거운 공기가 한데 섞여 어딘지 모를 방향으로 흘러가는 그런 느낌이었다. 이걸 향이라고 할 수 있나 싶을 정도의 불쾌감이 머릿속을 감돌았다.
진영은 고개를 들고 주변을 둘러봤다. 간혹 노숙자들이 지하철에 올라 노숙 생활에 찌든 냄새를 풍겨 눈살을 찌푸리게 했지만 그들도 눈치가 있기에 이른 출근 시간에는 거의 타지 않았고 사실상 그런 냄새도 아니었다. 사라지지 않는 향기는 불쾌한 감정을 넘어 온몸에 전율이 흐르고 닭살이 돋는 공포로 변해갔다.
그는 부르르 떨리는 팔을 쓰다듬으며 이리저리 눈알을 굴리고 주변을 둘러봤다. 여느 일상과 다름없는 출근길 아침이었다. 어깨를 으쓱하며 다시 고개를 숙이고 핸드폰 화면을 쳐다보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 향기는 없어졌다. 그리고 진영은 금세 향기에 대해 잊어 버렸다.
진영이 다시 그 향기의 존재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 건 저녁 식사를 마치고 아내와 함께 커피를 마시며 TV를 보던 중이었다. 진한 커피 향을 맡아야 할 자신의 코는 저번에 느꼈던 그 이상야릇한 향기를 기억해 내고 있었다. 이게 무슨 냄새지? 아! 지하철에서 맡았던 그 향이잖아? 근데 집에 있는데 왜 이런 냄새가 나지?
“요즘 집에 무슨 일 있어?”
진영은 아내에게 물었다.
“응? 별일 없는데? 왜?”
“아니, 그냥… 어제 꿈자리가 좀 뒤숭숭해서 물어봤어.”
진영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아내에게 대답했다. 하지만 이번엔 향기의 존재에 대해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시큼하면서도 차갑지만 무거운 느낌, 어둡고 좁은 밀폐된 공간에서 신선한 공기가 인간의 오염된 숨으로 채워지고 그 나쁜 공기의 밀도가 점점 높아져 결국 제대로 숨도 쉬지 못하고 폐가 굳어져 숨이 멈추는 느낌이었다. 그는 머그잔에 입을 댄 채 잠시 숨을 멈췄지만 그 향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는 아내가 눈치채지 못하게 서서히 숨을 내뱉었다.
그는 잠자리에 들어서도 쉽사리 잠을 청할 수 없었다. 그에게 이번 향기는 기분 좋은 예측이 아니라 어딘지 모르게 그를 죄어오는 공포였기 때문이었다.
며칠 후 그는 아내와 함께 바람도 쐴 겸 동네 공원을 찾았다. 한적한 길을 걸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지나가던 개 한 마리가 진영을 쳐다보더니 마구 짖기 시작했다. 개의 주인은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개의 목줄을 강하게 끌어당겼다. 하지만 개는 물러서지 않고 진영을 향해 큰 소리를 내며 짖어댔다.
진영은 아내와 개를 번갈아 쳐다본 후 난처한 얼굴을 했다. 개의 주인은 정말 미안하다며 평소에 이렇게 짖는 개가 아닌데 오늘따라 이상하다고 사과했다. 진영은 괜찮다고 말하며 아내와 함께 빠른 걸음으로 개에게서 멀어졌다.
얼마나 걸었을까? 그는 고개를 살짝 돌려 그 개를 쳐다봤다. 개는 주인과 함께 총총걸음으로 진영에게서 멀어지고 있었지만 진영은 멀어지는 개에게서 불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개가 왜 그랬지?”
진영의 아내는 그를 쳐다보며 물었다.
“글쎄… 내가 무서웠나? 나 나쁜 사람 아닌데. 동물들도 좋아하고 말이지.”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당신한테 이상한 냄새 나는 거 아냐?”
아내가 말하자 진영은 팔의 옷깃을 끌어 코에 대고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좋은 냄새만 나는데 뭘.”
그는 싱겁게 웃어 주고는 아내의 어깨를 감싸고 가던 길을 재촉했다.
눈을 뜬 시각은 새벽 4시가 좀 넘어서였다. 식은땀으로 범벅이 된 그는 거친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그리고 모든 사물이 어렴풋이 보이는 불 꺼진 자신의 신혼 방 침대 위에서 이불을 반만 덮은 채 우두커니 앉아 있는 그의 코에서는 향기가 나기 시작했다. 또 그 향이었다.
그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베란다로 나갔다. 밤기운의 찬 공기가 그의 얼굴을 감싸고 지나갔다. 밤바람은 땀을 흘린 뒤라 더욱더 시원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런 바람에도 불구하고 기분 나쁜 그 향기는 밤기운의 찬 공기와 함께 날아가지 않았다. 여전히 그의 코와 뇌를 자극하고 있었다. 이제는 더 진하고 가깝게 느껴졌다. 도저히 향기의 정체를 알 수가 없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향기로 일어날 일들에 대해서 많이 맞춰 왔지만 이번만은 알 수 없었다.
향기의 근원조차 찾을 수 없었을뿐더러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향이었다. 시체가 썩는 냄새라 할지라도 이것만큼 기분이 나쁘진 않을 것 같았다. (물론 맡아본 적은 없다) 그럴 정도로 이번 향기는 오랫동안 진영을 괴롭히고 있었다.
진영은 날이 갈수록 수척해졌다. 향기는 점점 더 빈번하게 그에게 다가왔고 그럴수록 그는 크나큰 고통과 공포에 몸서리를 쳐야 했다. 그의 아내는 남편의 건강을 걱정해 이 병원 저 병원을 같이 다녔지만 호전되는 모습이 보이지 않자 어찌할 바를 몰랐다.
급기야 그는 다니던 회사마저 관두게 됐고 하루하루를 술에 의존했다. 그의 능력을 모르는 아내는 진영의 진짜 고통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녀는 그를 정신병원에 입원시켜야 하나 고민도 했지만 자신의 남편을 그런 곳에 넣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오히려 진영이 이런 아내의 생각을 읽고 있었다는 듯 자진해서 정신병원에 입원을 해버렸다.
진영은 상담실 안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오늘은 유명한 심리학 박사가 면담을 온다고 했다. 진영은 병원 내에서도 유명했다. 정신병자들 사이에서 그는 여러 가지 미래의 일들을 말해 주었고 환자뿐만 아니라 병원 직원들조차도 그의 말에 매우 놀라 했다. 그는 그런 유명세와는 다르게 심적으로 엄청난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 하루하루 향기가 그의 목을 죄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쇠창살이 쳐진 창문 밖을 바라보며 어쩌면 이런 상황이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분명 향기는 미래를 말해 주고 있지만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향기는 진영을 계속해서 괴롭히고 있었지만 그의 주변에선 그 향기와 관련된 어떠한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은 결국 자신을 파멸로 몰아가는 길밖에는 되지 않기 때문이다. 향기가 나를 파멸로 몰아가는가? 정말 향기는 나 자신의 미래를 보여주기 위해 찾아온 것인가? 머리가 아프다. 코를 베어버리면 향기를 맡을 수 없을 텐데.
그때 문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중년의 한 남성이 상담실 안으로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박상철 박사라고 합니다. 오늘 심리 면담이 있는 건 아시죠?”
그는 쓰고 있던 중절모를 머리에서 벗어 진영이 앉아 있는 자리 앞 책상에 모자를 내려놓고는 자신도 진영의 앞자리에 앉았다. 병원 직원 한 명이 진영의 상태를 감시하기 위해 문 옆에 서서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여기서 유명하시더군요.”
그는 들고 온 서류 가방에서 서류 봉투를 꺼내며 물었다.
“본의 아니게 그렇게 됐습니다. 미친놈이 헛소리하는데도 유명해질 수 있다는 게 좀 웃기지만요.”
그는 씁쓸하게 웃고는 박사를 쳐다봤다. 깔끔하게 면도 된 얼굴은 세월의 깊이를 알 수 있는 주름이 깊게 패 있었다. 하지만 그런 나이와는 다르게 꼿꼿하고 눈빛이 강렬했다. 말 그대로 굉장한 카리스마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박사는 책상 위에 진영의 신상정보가 담긴 파일을 펴 놓고 휴대용 녹음기를 책상의 가운데 내려놓으며 물었다.
“녹음 괜찮죠?”
박사는 녹음기의 빨간 버튼 위에 손가락을 올려놓고 물었다.
“물론이죠.”
진영이 대답하자 박사는 버튼을 눌렀다. 테이프가 빙글빙글 돌아가는 게 보였다. 요즘 세상에도 저런 아날로그 녹음기를 쓰다니. 신기한 사람이었다.
“대다수 정신병자는 자신이 미쳤다고 하지 않습니다. 살인자가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하듯이 말이죠. 물론 뇌가 손상돼서 자신의 의견을 낼 수 없는 사람들은 예외입니다. 그런데 홍진영씨는 좀 다르더군요. 자신을 미쳤다고 또는 미치지 않았다고 일언반구 하지 않고 이곳의 생활에 순응하면서 살고 있어요. 왜죠? 난 여러 환자를 봤지만 홍진영씨 같은 환자는 본 적이 없습니다. 무슨 이유라도 있습니까?”
“이유요? 그런 건 없습니다. 그냥 여기 있는 게 안전할 거 같아서요.”
“안전이요? 누가 해치기라도 한단 말입니까?”
진영은 지금까지 겪어온 자신의 특별한 능력과 상황들에 대해서 박사에게 설명했다. 물론 박사도 다 믿는 눈치는 아니었지만 부정적인 태도를 직설적으로 내보이지는 않았다.
“그럼 홍진영씨는 결국 미래를 알 수 있다는 말이군요. 맞습니까?”
“그런 셈이죠. 향기로 알 수 있는 상황들에 대해서는 제가 다 맞췄으니까요.”
그는 귀찮은 일상을 얘기하듯이 건성으로 대답했다. 하지만 박사는 그에게서 점점 흥미를 더해가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맡는 향기는 도저히 알 수가 없는 향기란 말이군요. 인간으로서 맡아보지 못한 향기. 비교할만한 향이라도 있습니까?”
그는 매우 궁금하다는 듯이 진영을 재촉했다.
“비교할만한 향이라… 글쎄요 저한텐 너무나 어려운 질문이군요. 이 향은 말씀하신 것처럼 인간인 내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맡아보지 못한 향입니다. 하지만 느낌은 말할 수 있겠군요. 이 향기를 맡는 순간 모든 생각이 사라지고 온몸은 공포로 가득 차게 됩니다. 그렇다고 어떤 형상이 머리에 그려지는 것도 아닙니다. 머릿속은 그저 새하얗게 변해버리죠. 그래도 저는 알 수 있습니다. 지독한 공포와 저를 짓누르는 무거운 힘을 말이죠. 마치 우주 저 끝에서 저를 잡기 위해 오는 어떤 미지의 존재 같아요. 꿈속에서 달리려고 하면 다리가 더 무거워지고 땅으로 꺼지는 느낌을 받죠? 저는 하루하루가 그렇습니다. 이제는 늪 속에 몸뚱이는 다 빠지고 얼굴만 겨우 나와 숨을 쉬는 것 같습니다. 그나마 숨을 쉴 수 있는 얼굴이 빠지지 않도록 이 안에서 안전하게 있는 거죠.”
박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홍진영씨는 그 향이 곧 나를 덮쳐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건가요?”
“네, 아마 박사님은 결국 저를 미쳤다고 하겠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어쩌면 저는 미친 게 맞을지도 몰라요. 이 병이 깊어지면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르죠. 내 안전도 안전이지만 주변 사람들의 안전도 생각해야 했어요.”
그는 이야기를 마치고 그 향이 생각나는 듯 몸서리를 쳤다. 박사는 오늘은 이쯤에서 하고 다음에 다시 오겠노라며 약속을 한 후 돌아갔다. 병실에 돌아온 진영은 침대에 누워 곰곰이 생각했다. 앞으로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이 향기는 언제까지 지속이 될지. 끝없는 공포와의 싸움은 언제 끝날지. 그는 서서히 감기는 눈을 의식하지 못한 채 잠에 빠져들었다.
그 후 박사는 진영을 몇 번 더 방문했다. 첫 번째 만남 이후 더는 진영에게서 특별한 점은 찾을 수 없었지만 박사는 진영을 찾아오는 것에 대해 큰 의미를 두고 있었다. 그는 진영과의 상담을 학문적으로 다가가지 않았다. 분명 진영의 능력은 진짜였다. 하지만 박사 자신도 진영이 지금 맡고 있다는 향기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었다. 그 비밀을 풀기 위해서는 진영을 지속해서 만나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진영과 박사는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다.
3개월 후, 진영은 병원 관계자로부터 한 소식을 접했는데 이제 박사는 오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가 이유를 묻자 병원에서는 박사가 몸이 안 좋아져서 병원을 올 수 없다고 그에게 설명했다. 물론 그런 정도의 나이를 먹은 박사이긴 했지만 며칠 전까지 아무 탈 없이 병원을 방문 한 사람이? 그렇게 강직하고 꼿꼿한 사람이? 뭔가 이상했다. 하지만 병원 내부에서는 밖의 일을 알 수 없었기에 오지 않는 박사에 대해서는 더 다른 정보를 알아낼 수 없었다.
그런데 그 소식을 접한 후로 병원 내부는 이전보다 다른 움직임을 보였다. 병원 관계자들이 마스크와 위생장갑을 꼭 가지고 다닌다던가, 소독이란 건 하지도 않던 병원이 주기적으로 병실을 소독한다던가, 환자들의 위생 상태를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꼼꼼히 검사한다던가, 이상한 점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는 아내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의 상황들이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걸 확신 할 수 있었다.
“나야, 여보.”
아내의 힘든 목소리가 수화기를 타고 전해졌다.
“당신 목소리가 왜 그래? 어디 아파? 왜 그러는데?”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아내의 안부를 물었다.
“아니, 나 괜찮아. 그냥 좀 아파… 근데 병원에서도 어디가 아픈지 모르겠데. 일단 약은 지어왔으니까 좀 두고 보면 알겠지. 내 걱정은 말고… 당신은 잘 지내지? 요즘도 여전히 잠 못 자고 그래?”
그녀는 힘겹게 말을 이었다.
“똑같지 뭐. 박사가 오지 않은 이후로는 이곳 생활도 다시 재미가 없어졌어.”
그는 수화기의 선을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당신이 빨리 병원에서 나와야 할 텐데. 나 때문에….”
아내의 목소리는 이어지지 않았다.
“무슨 소리야! 난 여기 내 발로 들어온 거야. 당신 탓이 아니라고. 그리고 이건 나와 당신을 위해서라도 해야 할 일이야. 조만간 나가게 될 거야. 다시 말하지만 여긴 내 발로 들어온 데라고. 그러니 내가 안전하다는 생각이 들면 내 마음대로 나갈 수 있어. 그땐 우리 둘이 멀리 여행 가자. 모두 잊고. 알았지?”
그는 목소리에 힘을 실으며 아내를 격려했다.
“그래 여보. 우리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여행 가자.”
그는 아내와 전화를 끊은 후 한동안 말없이 서 있었다. 정말 그런 날이 오는 걸까?
병원 내부에 이상한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 건 아내와의 통화가 있던 날로부터 3일 뒤였다. 병원 직원들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줄고 있었다. 게다가 나이 든 환자들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병원의 그런 상태가 심해질수록 향기는 그를 더욱더 죄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진영 자신도 한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그 향기로 인해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일주일 후. 아침에 눈을 뜬 진영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병원 내부는 여느 때 보다 조용했다. 그는 병실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복도를 거닐었다. 당연하게도 있어야 할 환자들은 한 명도 없었다. 병원 데스크의 직원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병원 여기저기를 둘러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그는 지하실을 가보기로 했다. 그곳은 평소엔 환자들의 출입이 통제된 곳이었는데 그날따라 육중한 철문이 열려 있었고 진영은 붉은 조명이 새어 나오는 그곳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헉!”
그는 단발의 소리를 지르며 뒤로 물러섰다. 병원에서 봐왔던 사람들이 시체가 되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마치 수레에서 한 사람 한 사람, 실어 온 순서대로 털어낸 것 같았다. 그는 산더미처럼 쌓인 시체들 앞에 고개를 떨어뜨리고 죽어있는 병원 직원의 시체를 발견했는데 그의 손에는 쪽지가 한 장 들려있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시체의 손에서 쪽지를 빼 들었다. 거기엔 필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조잡하게 쓴 글이 남겨져 있었다.
“환자들뿐만 아니라 병원 직원들도 죽기 시작했다. 정부에선 이번 사건에 대해 어떠한 원인도 밝혀내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린 알고 있다. 떠도는 소문이 뜬소문만은 아닐 것이다. 무취, 무색의 살인 가스를 개발한 정부의 만행이라는 것. 그들도 이젠 돌이킬 수 없을 것이다. 가스의 살포가 사고였든 고의였든. 이제는 모두 다 죽는 수밖에 없다. 나도 얼마 안 남은 것 같다. 병원에 남은 몇몇 사람들도 곧 죽겠지. 누군가 우리를 발견한다면 태워서 재를 뿌려주기를 바란다. 누군가 살아 있다면.”
그는 손에서 쪽지를 떨어트리고는 문을 박차고 지하실을 뛰쳐나갔다. 병원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 세상은 너무나도 적막했다. 사람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병원으로 뛰어 들어가 데스크 위에서 차 키를 찾기 시작했다. 누구의 키인지 모르겠지만 자동차 키를 발견한 그는 주차장으로 간 후 키의 버튼을 마구 누르기 시작했다. 저 멀리 방향지시등이 깜박거리며 소리를 내는 SUV 한대가 눈에 띄었고 그는 차에 올라 시동을 걸고 미친 듯이 운전하기 시작했다. 목적지는 아내가 있는 자신의 집이었다.
차를 몰고 가는 내내 사람이라고는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아내만큼은 살아 있으리라 굳게 마음먹고 엄청난 속도로 집을 향해 달렸다. 도로 위에도 차는 한 대도 없었기 때문에 운전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깨끗한 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와 같이 편치만은 않았다.
그는 집에 들어서서 아내의 이름을 외쳤지만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불길한 예감을 뒤로 한 채 안방 문을 열었을 때 그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구역질하기 시작했다. 침대 위에는 반쯤 썩어버린 자신의 아내가 그를 반겨주고 있었다.
“아아악!”
그는 집을 뛰쳐나가며 소리쳤다. 그리고는 여기저기 아무 집이나 마구 들어갔다. 대부분 빈집이었고 자신의 아내처럼 집에서 죽어 간 사람들도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이길래 사람들이 죽었고 썩은 시체에 파리 한 마리도 나타나지 않는다 말인가.
그는 차를 몰고 미친 듯이 도시를 마구 돌아다녔다. 3시간을 돌아다녔지만 살아있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길 중앙에 차를 세우고는 핸들에 손을 얹은 채 생각했다. 일단 이런 일이 벌어진 원인을 찾아야 했다.
그래서 가까운 PC방을 찾아 들어갔다. 다행히 컴퓨터들은 작동하고 있었고 인터넷도 잘 됐다. 인터넷에서 그가 찾은 기사는 참으로 기가 막힌 내용뿐이었다.
어느 날 알 수 없는 병이 사람들을 습격했는데 보건 당국도 손을 쓸 수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 병이 신종 화학무기 개발에 쓰였던 가스가 대량으로 살포돼서 그렇다는 기사도 있었다.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사람들은 병에 걸려 죽은 게 확실했다. 그리고 진영이 병원에서 나온 후 지금까지의 상황으로 보면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생물이 다 죽은 듯했다. 그럼 자연적인 병은 아닐 터. 소문이든 아니든 그는 인위적인 어떤 물질에 노출된 인류가 저주받은 것이라고 결론을 지었다. 그러다 문득 진영은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런데 나는? 나는 왜 살아 있는 거지? 왜! 왜!”
그는 모니터 앞의 키보드를 두 손으로 쾅쾅 내리쳤다. 심지어는 자신의 앞에 놓여 있는 모니터를 집어 다른 곳으로 던져 버렸다. 그리고는 그곳의 모든 모니터를 뽑아 들고는 여기저기 미친 사람처럼 던지기 시작했다. 한참을 그렇게 미친 사람처럼 물건을 부수던 진영은 손에 들고 있던 모니터를 턱 하니 내려놓고는 밖으로 나갔다.
그는 아무도 없는 황량한 거리를 비틀거리며 걸었다. 조명이 들어온 도시 한복판의 도로는 한적했다. 그는 걸으면서 생각했다. 자신을 괴롭히던 향기. 무한의 공포로 몰아넣던 그 향기의 정체는 바로 지금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미래였다는 것을.
진영은 갑자기 미친 사람처럼 웃기 시작했다. 점점 더 크게 웃더니 이제는 아예 도로 위에 대 자로 눕고는 미친 듯이 웃어댔다. 아무도 없는 도로 한복판의 밤하늘은 적막하기만 했다.
흰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진영이 누워있는 캡슐을 관찰하고 있었다. 캡슐의 상단에는 빨간 글씨로 CP-32 라고 적혀 있었고 중간에 노란 종이가 붙어있었다. 이런 주의사항과 함께.
“실험체 32번. 성인 남성. 질병 코드 제로. PGV536 신경가스 투입 후 무의식중에 향기로 느끼는 반응에 대한 조사는 완료되었음. 간헐적인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긴 하지만 우려할만한 수준은 아님. 모든 자료가 정리되는 대로 실험체 32번은 소각, 폐기 처분함.”
* 본 소설은 창작자의 저작권 보호를 받으며 위반 시 처벌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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